
서울의 익숙했던 사역지를 뒤로하고 1997년 서귀포 끝자락 법환으로 내려온 한 목사가 있었다. “2~3년 계획을 하고 언제든 올라가자”던 그 못난 마음을 하나님은 제주의 거센 바람을 이겨내게 하시고 성도들의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붙잡으셨다. 28년 10개월,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그는 ‘제주 사람’이 되었고, 이제 그 세월의 기록을 한 권의 책 《사랑으로 머물고 은혜로 걷다》로 펴냈다.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28년의 섭리
신관식 목사의 제주 목회는 1997년 3월, 약수교회 시절 한 청년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목사님, 제주로 오세요"라는 말에 그는 머뭇거림 없이 순종했다. 하지만 부임 과정은 평탄치 않았다. 청빙 후보자 중 다른 이가 건강(당뇨) 문제로 탈락했을 때, 정작 당뇨를 앓고 있던 신 목사는 장로님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부임하게 된 것. 신 목사는 이를 ‘작은 종이 한 장 차이의 섭리’라고 부른다. 자신의 약함조차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고백하며, 그는 법환예수가족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목사님, 밥이 삼층밥이네요”... 진정성이 빚어낸 행복
어느 날 한 성도가 "목사님 설교는 삼층밥 같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비난이 아닌 최고의 찬사였다. 남의 설교를 도적질하지 않고 직접 쌀을 씻고 군불을 지피듯 30년 넘게 매일 해온 Q.T(말씀 묵상)를 통해 지어낸 따뜻한 밥이었기 때문이다. 설익고 탔을지언정 직접 지은 밥을 먹인다는 목회자의 진심을 성도들은 알아주었다. 그는 나보다 행복한 목사는 없을 것이라고 할만큼 성도들과 깊은 영적 교감을 나눴다.
제주의 아픔과 성도의 눈물을 가슴에 품다
제주 목회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는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교단과 정파를 초월한 위로와 치유 예배를 주도하며 제주의 깊은 상처에 다가갔다. 또한, 책의 3부 ‘성도를 노래하다’에는 그가 장례식마다 직접 쓴 ‘천국 환송시’들이 가득하다. 귤밭 돌창고에 살면서도 성전 터를 밟으며 기도했던 ‘아멘 할머니’ 김옥경 권사, 교회 창고 벽을 허물다 사고로 순교한 박동수 장로 등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한 성도들을 향한 그의 문장은 눈물로 적셔져 있다. “그냥 보내드릴 수 없었다”는 그의 말에서 양 떼를 사랑하는 참된 목자의 인품이 묻어난다.
100년의 역사를 잇고, 세계를 향해 걷다
법환교회는 1917년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던 강한준 권사가 고향을 위해 보낸 300원의 헌금으로 시작된 유서 깊은 교회다. 신 목사는 부임 5개월 만에 2002년 월드컵 기념교회 건축을 결정하며 교회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했다. 갈등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월드컵 경기장 입지 확정이라는 기적 같은 타이밍으로 모든 교인이 하나 되게 하셨다. 이제 그는 2026년 1월 25일 원로목사로 추대됨과 동시에 웩(WEC) 국제선교회 협력선교사라는 새로운 후반전 45분을 시작한다.
에필로그: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모자이크 작품’
신 목사는 자신을 ‘속물 인간’이라 낮춘다. 외제차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성전의 빈자리를 보며 괴로워하기도 하는 평범한 인간임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부서진 조각 같은 삶이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완성되었음을 이 책은 증명한다. "제주를 사랑하는 것은 떠나지 않는 것"이라 배웠다는 노(老) 목사의 고백은, 오늘날 쉽게 뿌리 뽑히고 흔들리는 우리 시대에 ‘머묾’과 ‘은혜’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